
사마르칸트 - 샤이바니드 가문 묘소
사마르칸트 샤이바니 왕조 묘역은 16세기 중앙아시아를 호령했던 샤이바니 칸국의 역사를 품은 유적입니다. 레기스탄 광장 인근에서 고요한 역사의 무게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 장소 소개
사마르칸트의 틸라-카리 마드라사 동쪽에는 샤이바니드 묘소가 있는데, 이곳은 여러 개의 묘비가 쌓여 있는 곳으로,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샤이바니드 왕조의 창시자는 아불 카이르의 손자인 무함마드 샤이바니로, 그는 1500년 차가타이 칸국의 지원을 받아 타슈켄트에 정착한 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정복하고, 그곳에서 통치하던 티무르 왕조의 마지막 군주들을 몰아냈다. 샤이바니는 이후 자신의 후원자들을 배신하고 1503년 타슈켄트를 점령했다. 1506년에는 히바를 점령했고, 1507년에는 메르브(투르크메니스탄), 동부 페르시아,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샤이바니 왕조는 1502년 아코윤루(이란)를 정복한 사파비 왕조의 공격을 저지했다. 사파비 왕조의 페르시아 샤 이스마일 1세는 샤이바니 칸의 성공에 경악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종교 정책 문제도 대립하게 되었다. 사실 샤 이스마일은 시아파를 국가 이념으로 선포한 반면, 샤이바니 칸은 수니파를 옹호했다. 1510년 12월, 3만 명의 증원군을 기다리던 메르브 전투에서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은 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도시 밖으로 나왔다가 매복에 걸렸다. 그들은 샤 이스마일의 17,000명 군대에 포위되었고,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패배했다. 참수당한 샤이바니 칸의 시신은 그의 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에 안장되었다. 오늘날 샤이바니 칸의 묘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마르칸트에 있던 샤이바니드 묘소는 1870년대에 점령국(차르 러시아)에 의해 파괴되었다. 샤이바니 칸이 사망한 후, 그의 유일한 아들인 무함마드 테무르 술탄(1514년 사망)만이 남았다. 샤이바니 칸은 대무굴 제국의 창시자 바부르의 여동생(칸자드)과의 사이에서 아들 쿠람을 두었으나,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1511년 봄, 그의 삼촌 쿠치쿤지 칸(1511-1530)이 모든 우즈베크인의 칸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불카이르 칸(1428-1468)과 미르조 울루그베크(1409-1449)의 딸 라비야 술탄 베김(1485년 사망, 투르키스탄에 안장됨)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실질적인 실권은 우바이둘라 칸에게 있었으며, 그는 사파비 왕조를 물리치고 이란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주민들은 수니파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쿠치쿤지 칸의 통치 하에서 사마르칸트는 샤이바니드 제국의 수도로 남았다. 16세기의 우즈베크 침공은 현대 우즈베크 민족의 역사에서 마지막 단계였다.
💡 방문 팁
선선하고 사진 촬영에 좋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방문을 추천합니다. 관람 시간은 약 30분에서 45분 정도 소요됩니다. 걷기 편한 신발과 식수를 챙기시고, 여름철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준비하세요. 현지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면 우즈베크 왕조의 흥미로운 건국 비화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